학원 출신 개발자
모든 사람이 어린 나이에 적성과 재능을 찾아 원하는 진로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졸업 무렵이라는 시점에 나아가려는 업계가 일자리도 풍부하고, 보수 등 여러 환경도 좋은 상황이기는 더욱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테크업계가 가장 호황인 지금 이 시점에, 어릴 때 자신의 관심사가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깨닫고, 원하는 전공을 택하여, 현재 개발자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길을 택했거나, 주변 환경이 허락하지 않아 자신의 흥미를 그저 흘려보냈던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학원 출신 개발자들은 상대적으로 운이 나쁜 사람들이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렇다. 어릴 때는 컴퓨터를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HTML, CSS, JavaScript를 배우면서 즐거워했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또래나 닮고 싶은 멘토를 주변에서 보지 못한 채 컴퓨터와는 점점 멀어졌다. 문송한 대학시절을 보낸 뒤에는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면서 언론사를 준비했다. 4년간 수백 개의 서류, 수십 번의 면접, 수 번의 최종탈락을 경험한 채 20대를 흘려 보냈다. 그럴듯한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다시 취업을 고민할 때 프로그래밍 교육 회사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고, 개발자라는 직업을 접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서야 개발이 재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개발 직군을 채용하려는 회사가 많고, 개발자들의 보수가 다른 직무의 보수보다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게 늦은 상황에서 나는 학원을 택했다.
학원 출신 개발자들에게는 이중의 굴레가 있다. 하나는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빨리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원 개발자를 바라보는 편견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학원 개발자들에게 넘기 힘든 벽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떤 면접관들은 전공자, 혹은 독학 학습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지만, 학원 개발자들에게는 수동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대다수의 현업 개발자들은 개발은 혼자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학원 출신들은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짐작해 버린다. 한 개발자는 학원 출신이라고 하면 서류에서부터 거른다는 이야기를 쉽게 하기도 한다. 짧은 기간 내에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했다는 것에 점수를 주기보다, 절대적인 지식과 경험의 수치를 잣대로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개발 인력의 공급보다 테크업계의 구인 수요가 더 높은 상황에서, 어쩌면 조금 부족했던 운을 채워보고자 개발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일 뿐인데 말이다.
내가 아는 학원 개발자들은 꽤나 열심히 인생을 살아낸 이들이었다. 어려운 결심을 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서 실행해 낸, 모험심 강한 사람들이었다. 빡빡한 학원 커리큘럼을 열심히 쫓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부족한 공부를 채우고자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는다. 같이 수업을 듣는 동료들과 공부를 함께 해나가기도 하고, 협업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전공을 하거나, 어린 시절부터 취미로 코딩을 한 사람들에 비하면 당연히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한번이라도 더 기회를 잡으려고 한다. 그런 편견 어린 시선은 비단 학원 출신 개발자들에게만 쏟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이주노동자들도 그럴 것이다. 누구든 인생에 한번은 조금 운이 나쁜 상황에 놓인다. 그때 최선의 선택을 만들기 위해 어떤 각오와 결심을 했는지를 한번 생각해봐 준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