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30대 중반에 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고등학생 때 헤르만 헤세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수레바퀴 아래서... 주인공의 성장과 그의 훌륭한 멘토이자 친구들이 나오는 이 심오한 책이 좋았다. 그런데 어쩌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10대 때나 읽고 감명을 받는거지 나이가 들면 유치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왠지 헤세의 소설을 좋아한 게 부끄러워졌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다시 헤세의 소설을 읽게된 것은 민음사 유투브 채널의 추천 때문이었다. 세계문학 편집자가 인생이 힘들던 시기, 데미안을 읽고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솔깃했다. 최근 몇 년간 마음이 잘 추스러지지 않고 힘들기만 했다. 십수 권의 심리학 서적을 사서 읽고 또 읽어봤지만, 마음이 마음대로 안된다는 사실만 괴로워질 뿐이었다. 힘들 때 소설로 위로를 받던 열여덟의 내가 떠올랐다.
싱클레어는 안정적이고 부유한 집안에서 밝게 자라왔지만, 친구의 괴롭힘을 받으며 인생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 그때 데미안이 그를 도와준다. 그리고 싱클레어가 내면의 혼란과 불안을 마주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데미안은 계속 주변을 맴돈다. 싱클레어는 계속 방황하며 인생의 해답을 찾아나서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여러 인물을 만나고 단단해지며 소설은 끝난다.
사실 줄거리는 크게 놀라운 부분은 없다. 그의 방황과 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인물들이 건내는 말들이 심리학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과정과 비슷했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던 내용이, 20세기 초 고전문학에 있었다.
먼저, 싱클레어가 성적 충동이나 이교도적 지식 등에 이끌리는 것을 거부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고 고민을 계속 이어간다는 내용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마음을 부정하기보다 그러한 욕구와 충동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싱클레어는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고, 어두운 세계를 대변하는 아브락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피스토리우스는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우리의 영혼이 소망하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거나 금지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돼요." 데미안이 세상의 절반이라 일컫는 욕망과 어두운 세계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그리고 내면의 갈등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며, 그 안에 답이 있다고도 이야기 한다. 내면에서 답을 찾으려는 여정이 얼마나 고된지는 싱클레어가 겪는 고독과 갈등으로 드러난다. "나는 그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대로 살아가고자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싱클레어의 이런 독백으로 서문이 시작한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끊임 없이 방황하고 갈등한다. 자기 자신에서 멀어지지 말고 '알'로 대표되는 세계를 깨부수라는 데미안의 목소리를 계속 새긴다.
싱클레어를 찾아와 해결책을 원하는 한 동급생에게 싱클레어 또한 이렇게 말한다. "너 스스로 생각해 보고, 정말 너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하면 돼. 다른 방법은 없어." 새로운 신과 종교를 만드려는 피스토리우스에게 실망한 싱클레어는, 밖에서 답을 찾으려는 그를 반면교사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안에서 확고해지고, 자신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소명이라는 걸 깨닫는다.
어려운 순간에는 마음 속 데미안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애착 대상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심리학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물리적으로 멀어진 기숙 학교에서도 데미안을 끊임 없이 마음 속으로 부른다. "내가 그를 강렬하게 머릿속에 떠올리고 내 질문을 집약된 형태로 그에게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질문에 응축된 영혼의 힘이 대답이 되어 내 마음속에 되돌아왔다."
데미안에게 편지를 쓰거나 찾아보려는 노력을 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 싱클레어는 스스로 되뇌이는 것으로 데미안을 마음에 새긴다.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미안은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너는 어쩌면 언젠가 나를 다시 필요로 할지도 몰라. (...) 네가 나를 부른다고 해도 이제 나는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무작정 올 수 없을거야. 그러면 너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이제 싱클레어는 데미안과 합일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은 성장하게 되어 있고, 정말 중요한 질문은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며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 소설이 이야기하는 주제가 묘하게 위로를 준다. 심리학 책에서 독자를 설득하려는 많은 당위와 설명을 소설 속 인물의 행동과 말이 더 마음에 깊게 와닿았다. 이야기가 주는 힘이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