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ffin's DevLog

비전공자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을까?

프로그래밍, 그거 재능 있는 사람들만 하는 거 아냐?

비전공자인 제가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 주변에서 많이 물어봅니다. 프로그래밍을 정말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말 타고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제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개발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고, 어느 정도까지 제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누가 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좀 대답해주세요…)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 데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프로그래밍은 너드와 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개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아이티 크라우드라던지, 실리콘밸리, 빅뱅이론 같은 드라마를 보면 나오는 안경 쓰고, 사회성은 엄청 떨어지는, 여자를 밝히지만 수줍은 남자들 말입니다. 제 머릿속의 개발자는 어릴 때부터 취미로 컴퓨터를 조립하고, 수학과 컴퓨터를 엄청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이미지였습니다. 혹은, 세상을 부수고 싶어하는 외로운 해커도 있겠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건 그래서인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컴퓨터 학원을 다니면서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 컴퓨터에 원을 출력하고 그 원에 색깔을 칠하며 소리를 질렀던 기억, 나모 웹 에디터로 웹페이지를 만들고 alert 창을 띄웠던 기억 같은 것은 모조리 잊은 채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입니다. (당장 브라질이나 포르투갈을 갈 일도 없으면서) 포르투갈어는 한번쯤 배워보려고 학원을 다니기도 했고, 경제학 책을 읽고 토론하는 스터디 모임을 조직하기도 했고, 자전거를 수리하는 방법을 배우겠다고 자전거 관련 워크샵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루의 1/3 정도를 보내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데 필요한 프로그래밍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못해본 것일까요?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지만, 개발자에 대한 이상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는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을 영상일겁니다. code.org 에서 만든 영상인 "What Most Schools Don't Teach"입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와서) 코딩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필요할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테크 분야는 80 년대 이후 유일하게 일자리가 줄어든 적 없이 증가해온 유일한 산업군이라고 하고, 그 중에서도 프로그래밍 분야에서의 수요는 늘 공급보다 많았습니다. 이런 매력적인 분야에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므로, 저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컴퓨터과학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그 선입견을 깨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좀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합니다. 멋진 테크기업들의 복지와 시설, 쿨한 분위기까지 보여주는 것은 좀 많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

그리고 소프트웨어라는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이 여성이었다는 점(가령 최초의 프로그래머라고 평가받는 에이다 러브레이스라던지, 제가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는 컴퓨터과학자 마거릿 해밀턴 같은 사람 말입니다.) 또한 제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 또한 여성이고, 세상이 가진 편견을 그대로 내면화한 것처럼 수학에는 자신이 없었고(실제로 수학을 그렇게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입니다),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과 풍부한 감성을 지녔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별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마거릿 해밀턴은 '프로그래밍 언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NASA 에서 아폴로 11 호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아 미국이 성공적으로 달 탐사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미국의 비영리 교육기관인 칸 아카데미에서 만든 영상 인터넷이 작동하는 방법을 보면서 실제로 나와 동시대에도 많은 여자 개발자가 존재한다! 는 것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범한 생활인에게도 프로그래밍은 필요하고 또 개발을 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코딩을 배우는 것은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준 생활코딩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개발자로 일하다가 온라인 프로그래밍 강의를 만드는 이고잉님도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비전공자 개발자였습니다. '생활코딩'이라는 표현 자체도 정말 좋았고, 프로그래밍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친절하고 흥미로운 비유로 가득한 생활코딩의 강의는 저도 코딩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선입견이 있습니다. 마치 개발자는 천재여야 할 것 같고, 오타쿠스러운 기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파이썬의 웹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인 장고(Django)를 만든 Jacob Kaplan-Moss 는 이러한 미신을 계속 비판해 왔습니다.

천재 프로그래머"에 대한 고정관념은 정말 위험합니다. 프로그래밍 입문의 벽을 높이고 입문 프로그래머들에게 겁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프로그래머가 된 사람들에게도 해가 되는 인식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더 많은 프로그래밍과 업무를 배우는데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프로그래밍은 배워야하는 많은 기술들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보통의 프로그래머가 된다고 해서 전혀 창피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 Jacob Kaplan-Moss (Django 창시자)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분야에 천재적인 인물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구루'는 극히 일부입니다. 직업으로서의 개발자는 단순히 최고의 알고리즘을 비상한 머리로 갑자기 풀어내는 일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혼자서만 일하는 개발자보다 다른 개발자들 및 유관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해야 하는 개발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또, 개발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브레인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민감하게 캐치해서 끊임 없이 스스로 노력하고 갈고 닦는 사람들이 개발자로서 더 성공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다지 오덕 기질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깊게 파고드는 성격이 못됩니다. 흔한 연예인조차 깊게 좋아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두루두루 알고싶은 것이 많고 궁금한 게 많을 뿐이지 그다지 끈질기지는 않습니다.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생긴 것도 어찌보면 시대가 이렇게 바뀌니까 공부해봐야겠다는, 어떤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라서, 사실 공부 분야에서는 스스로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볼걸, 조금만 더 매달려볼걸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재능이라는 미신"을 거둬낸 후 바라본 프로그래밍의 세계는 그저 보통 직업의 세계처럼 노력, 투명한 노력만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3 개월이 지난 후에 제 실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분야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확신을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내일모레 정도에 '역시 난 안돼' 하면서 학원을 뛰쳐나올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되더라도 후회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저렇게 질문하는 사람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는 시간에 일단 Hello, World! 부터 한번 출력해보라고. 거기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라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 것이 기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컴퓨터와 뗄 수 없는 세계입니다. 작게는 다른 사람과의 협업에서 필요한 디렉터리 구조나 파일이름 짓기 같은 사소한 지식부터 시작해, 컴퓨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컴퓨터적 사고까지 익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뭐가 되었든, 이상한 결론이지만, 불안한 마음이나 걱정 같은 건 내려 놓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스스로 얻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1990 년 하버드 재학 시절 수강한 컴퓨터 과학입문 과정 ‘CS50’이었다. 그는 지금도 “CS50 은 그 동안 들었던 수업 중 가장 놀라운 수업이었다”며 “내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고 말했다. 컴퓨터와의 만남은 그가 졸업 후 실리콘밸리에 입성하는 토대가 됐고, 반도체업체인 인텔에서 일할 기회도 줬다.

Loading script...